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밝은미래복지재단 담당자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일정 시간 이상 봉사활동을 한 자원봉사자에게 배지를 배부한다는 안내였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20대 대학생시절부터 청소년활동진흥센터와 사회복지자원봉사인증관리(VMS)에서 자원봉사를 했었는데,
다른 사회복지기관들을 포함하여 총 1,000시간 이상을 했던것 같다.
밝은미래복지재단에서도 봉사활동을 제법 많이 했었던걸로 기억한다.
자원봉사는 처음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분야였으나, 재학 중인 대학교에서 학기 중 일정시간 이상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 교양학점으로 인정해주고, 장학금도 주는 제도도 있었다. 그 때문에 시작했던 봉사활동이었는데, 하면서 나름 보람도 있었고 다양한 사회복지 기관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여러가지 대외 활동들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울산의 여러 많은 사회복지 비영리기관에서 했던 봉사활동들을 다양하게 하며 에피소드를 다 쓰자면 정말 팔만대장경에 버금가기에 온전히 글로써 전부 담아낼수는 없지만(중증장애인 생활시설에서 봉사활동 중 지적장애인으로부터 별다른 이유없이 주먹으로 얼굴을 폭행 당했던것부터 시작해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도서를 만들었던 일, 그리고 울산 동구에 소재하고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했던 환경보호 관련 1박2일 일정의 행사를 진행하며 뜻깊고 즐거웠던 추억들까지...) 그중에서 가장 뚜렷하게 기억남는 봉사활동은 도배작업이다. 그 이유는 1,000시간 봉사활동을 했던 것들 중에 가장 힘들었고, 봉사시간도 받지 못했고, 기부금만 냈던 봉사활동이었기 때문이다. 전국 단위로 지부를 두고있는 모 사단법인(비영리법인)의 울산지부라는 곳이었는데,(특정 정치적 색깔이 대단히 뚜렷했던 곳으로 울산에도 지부 사무실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졌다.) 이곳 비영리법인은 독특하게도 '자원봉사자'가 아닌 '자원활동가'라는 명칭을 부여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할려면 자신들이 주관하고 있는 자원활동가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고하여 낡고 허름한 1인용 공용 화변기를 쓰는 작은사무실로 방문했었는데, 나까지 포함 10명 안팎의 인원을 대상으로 작고 조촐한 '교육장'에서 교육을 진행했었다. (대부분 나포함 20대의 나이 어린 사람들이었는데, 나는 뒷자리쪽에 앉아서 들으려고 했는데 담당직원이 자꾸 나보고 앞자리로 가라고 몇번을 얘기해서 많이 불쾌했었다.)
그러면서 자원활동가가 되기 위해선 후원금을 내고 시작해야 한다면서(분명 의무적으로 내야한다는 취지였다.) 개인정보를 기재하는 무슨 종이를 줬었는데 (알고보니 기부금을 납부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사회초년생인데다 취업준비생이라 만원 단위로 기재돼 있던걸 모두 무시하고 기타 부분에 5천원을 수기로 작성했었다.(그것도 매월 정기적으로 납부하는 자동이체 방식) 지금 생각해보니 자원봉사하러 온 사람들을 상대로 기부금을 의무라는 이름하에 거의 강제(强制)적으로 납부하는 것이었다. 최근에 들어서야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모집자나 모집종사자는 다른 사람에게 기부금품을 낼 것을 강요하여서는 아니 된다.(제6조 제1항)"라는 조항이 있어 강요 아닌 강요를 하는 기부금 납부 요구행위는 더 이상 금지돼 있지만, VMS에 등록된 자원봉사 기관이라는 곳에서 봉사활동하러 온 사람들을 상대로 이 같은 기부금 모금 행위가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상당히 경악스러웠다. 기부금영수증은 발급해주긴 했지만, 아무런 근로소득도 없는 대학생, 취업준비생들이 기부금 세액공제 혜택도 못받는데 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여튼 도배작업 진행(사실상 노가다와 다름없었다.)을 위해 기관 담당 간사님과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첫날 아침일찍 방문했던 곳은 울산 북구 효문동 쪽에 있는 독거노인 한분이 거주하고 계시는, 한눈에 봐도 허름하고 낡은 1층 규모의 1970년대 지어졌을법한 갬성을 가진 음침한 주택이었다. 독거노인 할머니께서 나와서 인사를 해주시는데, 이 할머니는 평소 누군가에게 무엇을 받는게 너무 익숙하셔서인지 갑자기 어딜 외출나가야 한다며 대뜸 우리에게 현금을 달라며 구걸하셨다. (죄송하다는 말이나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없으셨다. 받는게 너무 당연하다는듯한 태도여서 더 놀랐었다. 결국 자원활동가 중 다른 한명이 돈 몇만원을 그 할머니께 드렸다.) 그리고 아침 일찍(기억으론 아침 8시 30분쯤이었던것 같다.)부터 도배작업을 바로 시작했는데, 한 눈에 봐도 허름하고 열악하고 미간이 찌푸려질만큼 불쾌한 냄새들로 가득한 독거노인 자택을 고생을 하며 도배를 마치고, 짐 원위치하고 마무리하는 늦은 밤 9시쯤 되어서야 겨우 작업이 모두 끝났다. 자원봉사로 보람있었다기 보단 그냥 노가다 무간지옥 그 자체였었다. 이 복지기관은 예산이 별로 없는지 식사도 각자 개인이 알아서 돈주고 해결해야 한다며 점심식사비까지도 주머니 사정 넉넉잖은 없는 돈 내돈을 털어가며 지출해야 했다.(갹출해서 중국집 짜장면을 시켜먹었던걸로 기억한다.) 늦은 밤까지 도배작업 노가다로 정말 힘들었었고, 도배 보조공들도 하루 일당받고 하는 일을 나를 포함한 자원활동가들은(대략 8~10명 정도 되었다.) 기부금도 거의 강제로 납부함은 물론, 식사비까지 내 돈으로 지출해가며 내가 이렇게까지 "자원활동가"라는 이름으로 무간지옥 막노동 자원봉사에 후원금까지 납부를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자괴감이 들었다. 이런 봉사활동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어린 대학생 자원활동가들(울산대 학생부터 유니스트 학생까지 다양했다. 대기업 다니는 직원 한 분도 계셨다.) 앞에서 대놓고 내색은 할 수 없었다.
하루 반나절 넘게 소요된 도배작업을 겨우 다 마치고 짐을 원위치시키고 마무리까지 완료한 그날 늦은 밤, 담당 간사님이 근처 호프집에서 회식겸 맥주 한잔 마시자고 해서 호프집을 들렀는데,(물론 회식 참석이 강제성이 있는것은 아니었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각 개인이 회식비를 1/N로 갹출했다.(품삯 한푼도 안받고 하루 반나절 이상 꼬박 날새가며 도배작업을 한 자원활동가들한테 수고했다며 한턱 내주는것도 아니고, 각자 회식비를 내라니...아무리 비영리법인 단체라고는 하지만 주머니 사정 넉넉잖은 대학생과 사회초년생 자원활동가들에게 너무 인색했다... 그만큼 재정상황이 무척이나 열악하고 가난하기 이를데없는 기관이란 반증일 것이다.) 이후 나는 다음날 몸살을 앓을 정도로 몸이 너무 아팠고, 더 이상은 도배작업을 계속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병원비가 더 나갈 것 같았다.) 미션스쿨처럼 당초 6개월 정도를 해야하는 도배 자원봉사활동을 이번 하루만 하고 끝내기로 하고, 기관 담당 간사님께 봉사활동 그만두고 후원회원도 탈퇴하겠다고 연락드렸다. 담당 간사님께 들었던 안내는 기가막혔다. 6개월 하기로 했는데 하루만 하고 관뒀으니 당신에게 자원봉사 시간을 VMS에 등록해줄 수 없다고 한 것이다.(내가 하루만 도배 봉사활동하고 그만둔 모습이 그 기관 입장에선 괘씸해보였던 모양이다. 독거노인 자택에서 짐 옮기고 도배 풀질에 붙이고 청소하고 짐 원위치까지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는데...봉사시간까지도 안주는 자원봉사 기관의 이런 행태에 실망과 서운함이 가득했다.)
나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기에 얼떨결에 그냥 알겠다고 하였고, 원치않는 자동이체 신청이 되어있던 기부금 납부도 중단해달라고 하였다.(거의 강제로 가입했던 정기 후원회원을 탈퇴. 아까운 내 돈 5천원을 기부금 명목으로 날렸다.) 결국 해당 자원봉사 기관에 기부금만 강제로 납부하고, 도배작업 무간지옥 노가다로 자원봉사자로서의 보람은 커녕 하루 종일 고생만하고, 점심식사 저녁 회식비도 내 돈으로 해결하고, 자원봉사 시간도 못 받은, 그야말로 눈 뜨고 코 베이듯 당했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만큼 큰 손해를 보게되었고, 지금 생각해봐도 참 어이없고 기가막힌 경험이었다. 그때 내가 이제 겨우 순진한 20대 사회초년생에 취업준비가 한창이었던 나이었기에 이 기관의 담당자들과 더 이상 싸우고 싶진 않아 그냥 넘어갔지만, 10여년 지난 아직까지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고 화가날 따름이다. 이곳에 해당 기관 단체명을 쓰고 싶지만 너무 오래전의 일이기도 하고, 아직 여전히 활동중인 기관이라 행여나 내 글을 보고 명예훼손 등 사실적시나 허위사실을 썼다고 할까봐 해당 특정 기관명은 작성하지 않기로 했다.(법의 무서움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기에 몸을 사리고 있는중이다...)
혹여나 다른 순진한 대학생이나 20대 사회초년생들이 봉사활동과 관련하여 위와 같은 비슷한 사례로 더 이상 피해를 겪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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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금은 나이가 들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는 봉사시간은 나에겐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자본의 위력이 내 삶의 일부를 양보할 만큼 돈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원봉사는 대부분 10대~20대 어린 나이의 학생들이 개인의 자발적 의사(자아실현)보다는 학교에서 요구하는 등 다른 목적을 가지고 주로 많이 하기 떄문에 설사 자원봉사 현장을 가더라도 나이 많은 내가 그 어린 학생들의 사이에 끼어들어 함께 봉사활동하는 것은 별로 어울리지 않단 생각에 이제 자원봉사는 더 이상 하지 않고 있다.
VMS 배지에는 "200"이라는 숫자가 적혀있었다. 배지는 작고 아담했다. 고등학생 시절 교복 카라부분에 달았던 학교 배지와 비슷한 크기였다. 200은 자원봉사활동을 했던 누적시간을 의미하는것 같다. 밝은미래복지재단에서만 무려 200시간을 봉사활동 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밝은미래복지재단에서 정말 많이 활동했던걸로 기억한다. 벌써 10여년 전이라 20대 시절의 기억은 잘 나진 않지만, 기억속에서 하나씩 어렴풋이 날 것 같다.
원래 밝은미래복지재단은 울산교회 바로 옆에 약 4층 정도의 조그만한 작은 건물에 사무실이 있었다. 이후 바로 맞은편에 새로 신축된 건물 4층으로 새로 이전되었다. 옛 사무실이 있었던 건물에 봉사활동하러 방문했던 기억이 날것 같다.
2025년 1월 23일 목요일 오후, 밝은미래복지재단 건물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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