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8일 일요일.
휴일 비어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던 중, 장생포에 다녀오기로 했다. 장생포가 있는 울산 남구 매암동은 나의 아버지의 고향 대일부락(대일, 大日)이 있던 곳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납도마을 망향비에 대해, 나는 처음부터 이 비석과 마을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건 아니었다. 남구 매암동에 있는 한온시스템(옛 한라공조) 울산공장의 아웃소싱 협력업체 소속으로 예전에 잠시 근무한적 있었는데,(공장 진입 도로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1.5차선이다. 트럭 1대, 승용차 1대가 서로 겨우 마주보며 아슬아슬하게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매우 독특한 진입도로를 갖고있다.) 한온시스템 울산공장의 주소가 "납도로 110"이라는 도로명주소로 돼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조금씩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여러 신문기사와 유튜브 영상 등을 보고 이곳 매암동에 과거 납도마을(納島)의 존재를 알게되었다.
원래 처음에 가보려 했던곳은 장생포초등학교(장생포국민학교) 옛 터이다. 장생포국민학교 출신인 아버지의 말씀으로는 지금의 장생포초등학교가 위치한 곳이 초기엔 죽도, 그러니까 지금은 매립되어 육지와 연결된 죽도 섬 근처의 장생포교회 뒷쪽에 옛 장생포국민학교가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양죽부락 옛터비 바로 옆에는 "고개만당길"이라는 옛 길을 안내하는 비석도 세워져 있다.
양죽부락 옛터비 도로 건너편에 있는 양죽마을의 당수나무 애기목과 양죽마루의 모습.
현대광업 대원씨앤엠(울산 남구 장생포로 389) 바로 앞에 있다.
수백여년 자생했다고 하던 양죽마을의 당수나무는 과거 태풍으로 고사(枯死)되어 애기목만 남아있다고 한다.
바로 옆에 있는 정자亭子)는 "양죽마루"라고 하는데, 원래는 이 자리에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제당(祭堂)이 있었다고 한다.
울산에는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제당과 당산나무가 많았다.
공업지구로 지정된 당시에는 국가에서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제사 문화를 미신(迷信)으로 여겨 배척 했었다는 기록을 본적 있다. 지금은 울산의 그 많은 제당이 상당수가 사라져 몇 군데밖에 보존돼 있지 않다.
내가 살던 울산 남구 달동에도 제당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느새부턴가 사라지고 없다.
양죽마루라는 정자는 과거 양죽마을에 제당이 있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양죽마루는 조성된지 오래되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나무가 부서지는 등 훼손이 많아 정자(亭子)로써 제 역할을 하진 못하고 있다.
먼저 둘러본곳은 양죽부락 옛터비이다.
비석에 아버지께서 거주하셨던 "대일", 그리고 죽도가 선명하게 표기돼 있었다.
서태일 시인이 지은 "그리운 고향, 양죽" 시구절이다.
서태일 시인도 양죽마을에 거주했다고 한다.
장생포교회의 모습. 뒷쪽의 작은 골목길로 들어가면 매암동 대일로 바로 갈 수 있어서 뭔가 가까운 느낌이 든다.
안타깝게도 옛 장생포국민학교의 터는 찾을 수 없었다.
납도마을이 있었던 장생포문화창고와 한국공업입국 출발지 기념비가 있던 한국플라스틱엔지니어링(KEP) 공장을 지나 장생포 시내버스 정류장 종점에서 어둑한 좁은 1차선 골목길을 오래 걷다보니 어느새 납도마을 망향비를 발견할수 있었다. 이곳 망향비의 위치는 울산매일신문의 기사를 통해 알수 있었다. 링크는 다음과 같다.
https://www.iusm.co.kr/news/articleView.html?idxno=845449
울산신문 기사도 납도마을에 대해 알게되는데 도움이 되었다. 신문기사 링크는 아래와 같다.
https://www.ulsanpress.net/news/articleView.html?idxno=520896
어둑한 골목길의 모습. 인적이 드문 곳이라서 무서웠다.
납도마을 망향비의 모습. 인성산업 울산공장(납도로 64) 정문 경비실 앞 담벼락 한켠에 쓸쓸히 자리하고 있었다. 참고로 납도로는 한화솔루션 울산2공장 ~ 한온시스템 ~ 인성산업 ~ 효성 공장이 있는 방면까지의 도로명주소다. 실제 납도마을은 KEP(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와 인성산업 있는쪽 방면에 있었을 것으로 어림잡아 추정해볼수 있다.
납도마을 망향비는 인성산업 울산공장 내부로 들어갈 필요는 없으며,
공장 경비실 바로 앞 작은길목 담벼락쪽에 세워져있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망향비를 세우며"라는 제목으로 글귀가 쓰여져 있다.
망향비 비석에는 "망향비를 세우며"라는 배경이 기재돼 있다.
시 구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망향비(望鄕碑)를 세우며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가리
복숭아꽃, 질레꽃 향기 그윽한 내 고향 납도(納島)에
고귀한 손님
조국 근대화의 첫걸음을 맞이하기 위해
납도(納島)의 흰등산 언덕 위에 구름처럼 모였구나!
일천구백육십이년 이월 삼일
개구리섬 코앞에 삼백 물줄기
하늘 높이 치솟는다.
여름철 발가벗고
멱 감으며 물 따먹던 곳이 아니던가!
떠나기 못내 아쉬워 눈물을 감추며
무거운 발길 뒤로 한 채 고향 납도(納島)를
다만 저 근대화의 물결 속에 두고 갔을 뿐이다.
고산댁, 개산댁, 석천댁, 신리댁, 지일댁......
언제 또 우리는
다시 찾아 볼 수 있을까?
꿈에도 그리운 납도(納島) 마을 어귀에
그 때의 그리운 이름을 하나하나 새겨
이렇게 비(碑)를 세운다.
납도향우회 일동
(글. 이영호)
납도마을에서 납도(納島)라는 한자어에서 납(納)은 "세금을 납부하다"라는 뜻의 납세(納稅)와 같은 한자어를 쓰고 있는데,
어떤 특별한 의미는 아닌것 같고, 단지 이곳 마을 앞에 개구리가 "납작"하게 엎드리고 있는 모양의 섬(島)이 하나 있었다고 해서 납도(納島)마을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납(納)은 "납작하다"라는 순우리말을 행정편의상 단지 한자어로 형식 표기한 것이고, 도(島)는 "섬"이라는 뜻의 한자어다. 울릉도, 독도, 연평도, 제주도할 때 도(島)와 같은 한자어인 것이다.
망향비 바로 옆에는 납도가(納島歌)라는 비석이 하나 더 세워져 있다.
가(歌)는 노래라는 뜻의 한자어다.
납도마을 옛 주민들이 고향을 떠나게 되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만든 노래라고 한다.
납도가 가사 구절은 다음과 같다.
납도가(納島歌)
설동복 작사.작곡
1.
큰등산 작은등에 성황당 그 소나무
작은샘 두레박질에 옷깃이 젖어드네
개골섬 바닷가에 조개줍는 아낙네야
내고향 납도땅은 한숨속에 잊혀지네
2.
흰등산 진등산에 진달래꽃 피고지고
앞바다 뒷동산에 고기잡고 그네타며
과수원 울타리에 들려오는 노랫소리
내고향 납도땅은 추억속에 묻혀가네
내가 군인이었던 시절, 2008년 3월에 입대하여 훈련소에서 불렀던 30사단가(노래 가사 구절은 다음과 같다. "한강물결 굽이치는 역사의 터전위에. 전선을 주름잡는 폭풍의 철갑부대. 선봉의 필승투혼 펼치자 만주벌판 배달민족 맹렬위용 세계에 떨치리라. 필승 용사 가는곳에 승리뿐이다. 아 그 이름도 찬란한 무적의 30사단")와
2010년 1월 전역때까지 자대에 배치받아서 군생활했던 "포대가(인터넷 검색으로는 나와있지 않지만, 내 기억을 더듬어보면 노래 가사 구절은 대략 다음과 같다. "가슴 벌리고 온누리 감싼다. 온 영광 가슴에 안고 구릿빛 주먹 보이며. 팔도의 사나이 여기에 모여. 목숨바쳐 영광지키는 우리 포대 무적 삼포대". 참고로 나는 경기도 양주에 있는 898포병대대 3포대에서 군생활했는데, 각 포대별로 포대가 노래 가사구절이 모두 달랐던걸로 기억한다.)"처럼 어떤 특별한 음률이 정해진 것은 아닌것 같다.
"납도가"라는 망향의 노래 가사 내용이다.
납도향우회 회원 명단도 비석 뒷편에 있었다.
양죽부락 옛터비에도 양죽향우회 관련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좀더 멀리서 촬영해보았다. 인성산업 울산공장 정문으로 오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납도마을 망향비를 어렵지않게 찾을수 있다. 카카오맵에도 지도등록을 해놓았다.
대략 이쯤에 망향비가 있다.(빨간색 동그라미 표시된 부분)
납도마을 망향비를 구경하고 다시 시내버스를 타러 큰도로로 나왔다. 도로 안내판에 "납도로"라 표기돼 있다. 좌회전하면 자동차부품 회사 한온시스템으로, 우회전하면 공드럼통 만드는 인성산업으로 갈수 있다. 두 회사 모두 상당히 규모가 크고 건실한 기업이나, 빡쎄고 험한 일을 하는 공장들이라 그런지 전부다 남자 직원들밖에 없다.
실제로 내가 아웃소싱 소속으로 근무했던 한온시스템 울산공장은 자재 하나 무게만 10kg 내외에 달하는 것들을 들고 옮기고 조립하고 카트에 담고 까대기도 치는, 그야말로 고된 노동 그 자체였다. 휴게실에는 매캐한 담배냄새가 자욱한, 영화 "비트"와 "친구"에 나올법한 건달 모습에 험상궃게 생긴 남자직원들이 있는 와일드함 그 자체였다. 그래도 큰 회사라서 밥은 맛있게 잘나오고, 근무시간 쉬는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누가 크게 터치하는 일은 없었으며, 내 일만 잘 쳐내면 쉴수 있는 비교적 자유로운 근무 환경이었던것 같다.(그러나 이러한 장점이 단점을 상쇄시키지 못할 만큼 일이 너무 고되고 힘들었으며, 텃새도 있었고, 남자직원들 특유의 와일드한 분위기를 도무지 적응하기 힘들었다.) 또 인성산업 울산공장 협력사에 면접보러 갔던 당시에는 엄청난 공장소음으로 귀마개를 하고 일하는 그런곳이었던것 같은데, 협력사 직원들은 주로 공드럼통 상하차를 하는, 한눈에봐도 빡쎄보이는 업무였던것 걸로 기억한다. 물론 나는 면접때 현장을 둘러보고는 겁이나서 입사하진 않았다.
그동안 납도로라는 명칭이 뭔가 "납(Lead, 원소기호 Pb)"이라는 금속이 생각나 공업도시 울산을 상징하는 명칭인줄 알았으나, 과거 개구리가 납작 엎드린 모양의 "개구리 섬"이 있다고해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었고,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많이 살던 곳이었다는 것을 이번 망향비 방문을 통해 알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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