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형서점에 가보면 메인 진열대에 눈에 띄는 도서가 있다.
한때 누적판매량 100만부를 돌파하며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책이다.
최근에 영화로도 제작된 적이 있다.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1982년에 태어난 김지영씨가
우리나라에서 '한국 여성'으로 살아가는
파란만장한 인생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대략적인 소설 내용 구성을 살펴보자면
(사실 영화는 보진 못했다.)
3남매중 둘째로 1982년에 태어난 주인공 김지영씨는
태어날 때부터 단지 아들이 아닌 딸이라는 이유로
할머와 어머님께 사소한 생활습관부터
막내 남동생으로부터 직간접적인 차별을 겪게 되고,
이후 초등학교 입학에서부터 사춘기,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
남편을 만나 결혼하며 임신과 출산, 육아까지
생애 전반에 걸쳐 겪게 되는,
우리나라 여성으로서 받는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1인칭 시점에서 담담히 그려나가고 있다.
주인공 김지영씨의 소설 속 나이는 34세,
1982년생임을 감안한다면 올해 기준으로 만 37세 중년을 앞둔 나이다.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건
무엇보다도 이 소설을 읽고 구매하는 소비층이 절대 다수가
주인공과 동년배인 2,30대 여성들이며,
또한 이들로부터 상당한 ‘공감’과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2,30대 따님을 둔 5,60대 아버지들도
이 소설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하지만 이 소설을 비록 1982년생은 아니지만
1970년대 후반에 태어난 누이가 둘 있는 30대 남성인
필자가 읽어본 바로는
소설 속 주인공의 삶에 대해 전혀 공감이 가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많은 의구심만 들었다.
주인공 김지영씨는 언제나 ‘여성’으로서,
내가 여자였기 때문에, 여자였기에
우리 사회에서 어떤 ‘성차별’을 겪고 있다는 형식의
자기 독백의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동시대 태어난 나의 친누나들은
생애 단 한번이라도 겪어봤을지
의문이 드는 억지적인 구성도 있었다.
아니, 우리나라 여성이 평생을 살면서
번개를 몇 번 맞을 확률보다도 더 낮은 확률로
겪게 될 삶일지도 모른다.
물론 학교든 사회에서든 누구나 차별이라는 것을 겪는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남녀 성별의 문제로만 귀결시킨다면 문제가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으나 여성이 어떤 성차별 프레임을 겪는다고 하여
반대로 남성이 성차별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명제가 성립되진 않는다.
만약 82년생 김지영씨의 논리대로라면,
반대로 같은 시기에 태어난 또래 남성들,
그러니까 1980년대에 태어난 남성들도
남성 나름대로 학교와 사회에서 수많은 성차별을 쉽게 겪었다.
초등학교 시절 신체검사 때
여학생들은 교실과 창문을 모두 통제하여
남학생들을 들여보내지 않았지만
남학생들이 교실에서 상의 탈의하여 신체검사를 받고 있으면
여학생들은 아무거리낌 없이 교실에 들어오곤 했었다.
내 기억으론 여학생들은
그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도,
남학생들이 수치심을 겪을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남자들도 성적 수치심을 분명 느낀다.
그럼에도 성적 수치심을 느낀다고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도리어 ‘너는 남자니까’, ‘남자가 쪼잔 하게’라는 비속어를
들을 수밖에 없기에
남자로써 겪는 묵시적 차별을
사회구성원들이 쉽게 용인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프레임을 저변에 갖고 있다.
학교에서 겪는 차별은 그 뿐만이 아니다.
남학생은 신체적으로 여학생보다
더 허약한 사람이 분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학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가혹한 체벌을 받으며
사춘기 학창시절을 겪어왔다.
대학교에선 어떠한가.
남학생들도 납부하는 총학생회비로 운영하는
총여학생회에선
정작 총여학생회장 선출 땐
남학생들의 선거권을 일방적으로 박탈시킨다.
총여학생회장은 남녀 학우 모두가
평등하게 수혜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총여학생회의 설립 취지를 완전히 몰각시키고
일방적인 여학생 우대 정책만을 펴고 있다.
성평등적인 학우 정책을 내가 다니던 모교에선
4년 재학시절 동안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그러한 행위가 오늘날 진정한 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과연 용납될 수 있는 일인지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 뿐만 인가.
대부분의 대학교에는 남학생 휴게실은 없지만
여학생 전용휴게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또래의 남자들은
그것이 성차별이라 생각할지언정
표면적인 의사 표현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또한 82년생 김지영 소설과 영화 속의 여자주인공은
마치 여자가 남자에 비해 훨씬 살기가 어렵고
인생의 난이도가
남자보다 훨씬 더 어렵고 높다는 것처럼 기술돼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여자가 남자에 비해 인생 난이도가 훨씬 낮은 편이다.
사회에서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 난이도가
여자 쪽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대체로 여성적 매력보다
남성적 매력을 갖추는게 더 어렵다.
남자는 알파가 돼야하는데,
여자는 베타 정도만 해도 된다.
남자는 체력, 힘, 재력, 지능, 자신감, 강인함, 용기 같은걸
어필해야 하는 반면,
여자는 대체로 수동적인 성향과 행동을 가지면
여성스럽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나긋한 말투, 상냥함, 친절함 같은 성향을 갖추면
여성적 매력이 있다고 사회에서 쉽게 인정받을 수 있다.
남자는 아프고 힘들어도 내색하면 안되고
자기 약점을 드러내는건 사회적으로 거의 금기사항에 가깝지만,
여자들은 넋놓고 울어도 위로를 받는 경우가
남자보다 훨씬 많다.
실제로 직장에서 우는 여직원은 봤지만,
우는 남직원은 단 한번도 본적이 없다.
여자는 남자에게 리드를 받을 수 있는 반면,
남자는 자신이 여자를 리드해야 하고,
그 반대의 경우엔 남자 구실을 못한다는 사회적 눈총을 받는다.
여자는 뭐든 남자보다 약간 못해도 상관없지만,
남자는 그게 안된다.
결혼도 남자가 여자보다 뭐라고 하나 더 있는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많다.
82년생 김지영 소설과 영화에서
마치 여자의 인생 난이도가 남자보다 더 어려운 것 마냥
서술돼 있는것과는 달리,
현실에서 인생난이도는 여자가 남자에 비해 훨씬 쉬운 것이 맞다.
이는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선 ‘여성 우대’라는 간판을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사는 울산 지역만 하더라도
소모임에서부터
각종 여가, 음식점,
심지어 상품을 판촉 하는 마케팅 행위에 이르기까지
‘여성 우대’라는 테마를
사회 구성원들은 아무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이를 성차별의 프레임에 결코 가둬놓진 않는다.
2017년 기준 20~24세 젊은 남녀 인구성비가
무려 141:100에 이르는
심각한 남초현상을 겪고 있는 울산에서
어쩌면 용인될 수도 있는 사회적 분위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 속의 주인공 ‘1982년생 김지영’은
이러한 ‘여성 우대’의 사회적 프레임을
아무렇지 않게 누리면서도
단 한번이라도 그것이 성차별이라 느끼진 않는 것 같다.
소설 속 주인공 김지영은
마치 여성들은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것처럼 묘사하는데,
정작 남자들이 겪는 차별에 대해선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것 같다.
‘여성 우대’는 그 뿐 만이겠는가.
우리나라는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며,
전쟁이 종식되지 않은 휴전국가 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역사적으로 군대에 강제 징집된 적이 없다.
젊은 20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청춘을
여성들은 앞으로의 창창한 인생 계획을 마음껏 설계할 때,
같은 또래의 남자들은
군대라는 또 다른 장벽을 넘어야만 하는 운명으로
약 2년여 남짓 강제 징집되어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북한과 마주하며
나라를 지켜야만 한다.
그럼에도 나라를 지키고 온 남자들에 대한
요즘 여성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오히려 여성계와 여성단체가 주도적으로 나서
군가산점 제도를 국민적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폐지시키고,
징병제로 복무한 또래의 남성들이
사회적으로 우대를 받기 위한 정책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느끼고 있는 것이 요즘 여성들의 현실이다.
여성 우대는 징병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세금에서도 여성 우대 정책을 심상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일정한 소득 요건, 가족요건을 갖춘 여성이라면
근로소득에서 연간 50만원씩 연말정산 때 소득공제를 해주는
‘부녀자공제’ 제도가 있다.
이 소득공제는 오로지 여성들만 받을 수 있다.
조세의 부담이 공평하게 국민들에게 배분되어야 하는
조세 평등의 원칙에 철저히 위배됨에도
여전히 이 조세제도를 2014년 개정 이후
꾸준히 도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82년생 김지영’ 소설 속 주인공은
사회에서 온갖 성차별의 불평등만 겪었을까.
현재의 어머님 세대와 비교해볼 때,
결코 100% 불행한 삶만을 살아왔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오히려 남들 가는 대학도 갔다 오고,
(실제로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여성들의 대학진학률은
남성과 동등한 수준이었다.)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만나서 마음껏 연애도하고,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하고, 육아도 하는
“할 건 다하고” 사는 여성이다.
오늘날 연애는커녕
연애와 결혼, 출산,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한
‘3포세대’, ‘N포세대’라는 신조어를
같은 또래의 주인공 김지영씨는 알기나 할까.
단연컨대 고개를 ‘절레절레’ 하거나 별로 공감하진 못 할 것이다.
과정이 조금 험난했을 뿐,
정작 본인은 포기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소설은 여성으로써,
권리의 쟁취에 대한 저항적 성격만이 담겨있을 뿐,
정작 권리에 수반되는 의무에 대해선 도외시하는 점이 없지 않아있기에
소설책을 읽으면서 실망감이 상당히 컸다.
학창시절에 성차별을 겪었다면서
총여학생회장 선출에
남학생들의 선거권을 박탈시킨 것을 묵인한 점,
군에 강제 징집을 당하지 않은 점,
회사에서 차별을 겪고 있다면서
정작 내 월급의 원천징수영수증에
‘부녀자공제’ 50만원 소득공제 혜택을 받은 것에 대해
82년생 김지영은 철저히 입을 다물고 있다.
부모님 세대라면 모를까.
1980년대, 또는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여성분들께,
진심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이 땅의 우리 어머님 세대들 앞에서
맹세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82년생 김지영”의 소설 내용이 ‘공감’되는지,
소설 속 내용들이 실제로 당신들이 모두 겪어본 내용인지.
작가 조남주씨는
“1982년생 김지영씨가 진짜 어딘가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설 마지막 한 켠에 작성돼 있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필자의 누이들을 볼 때,
어딘가 살고 있다는 1982년생 김지영은 없다.
1962년생 김지숙은 있을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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