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울산광역시 남구

울산 남구 야음동, 모교(母校) 태화중학교를 찾아가다.

울산노총각 2024. 10. 13. 12:21
728x90

 

2024년 10월 9일 수요일.

 
한글날 연휴, 동네 어디에 가볼까 한참을 고민하며 여천천을 산책하던 중, 나의 모교였던 태화중학교에 한번 방문해보기로 하였다. 태화중학교는 현재는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삼산동 시내에서 여천천 건너편(울산 남구 화합로71번길 24)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20년전 내가 다닐 당시에는 달동사거리에 있는 롯데마트 뒷편, 지금의 청솔초등학교(울산 남구 삼산로94번길 20)에 자리하고 있었다. 태화중학교 옛 본관건물은 상당히 노후화되고 낡았고 금방이라도 허물어질것만 같았으나, 이곳 야음동으로 이전한 이후 본관을 새로 신축하면서, 옛 태화중학교가 있던 자리엔 청솔초등학교가 새롭게 생기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엔 태화중학교에서 내가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던 시점이었다. 동평사거리 쪽에 있는 달동 강남초등학교(53회)를 2001년 2월 졸업하고, 그 해 2001년 3월, 어설프고 낯선 교복을 처음 입고 태화중학교에 입학했었다. 남녀공학이었던 초등학교를 다니다 남자들만 바글바글한 중학교에 입학하니 한편으론 무섭고 두려움이 가득했었다. 나보다 불과 1,2살 밖에 차이나지 않는 중학교 2학년 3학년 선배 형들이 마치 영화 '바람'에 나오는 선배들처럼 나에겐 엄청나게 크고 무서운 존재로 느껴졌었다. (지금 나이들어 15살, 16살 학생들을 보니 그냥 꼬마아이들처럼 보인다.) 화장실도 오래되고 냄새나는 소변기와 화변기(쪼그려앉아 용변을 보는 변기통)를 쓰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학교에서 대변을 보는 일은 없었다. 특목고(현대청운고)와 과학영재고를 진학하던 똑똑한 학생들도 있었다. 중학교 3학년 시절 같은 반 짝꿍이었던 공부 잘하던 친구는 현대청운고를 진학했었다. (부모님 한분이 공무원이셨고, 나름 금수저에 잘사는 집이었던걸로 기억한다. 휴대폰이 별로 흔치 않았던 그 시절에 폴더블 휴대폰을 들고 다닐 정도로 잘사는 아이였다. 이후 포항공대[POSTECH]를 진학한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아 소식을 알 수 없다.) 당시엔 중학교를 졸업하고 울산공고 울산상고 울산자연과학고(폐교) 같은 실업계고(그 당시엔 "특성화고"가 아닌 "실업계" 고등학교라 했었다)가 아닌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선 '연합고사'라는 고입선발고사를 치뤄야했다. 1지망 2지망 3지망까지 고등학교를 적는 란이 있었는데, 나는 1지망에 신정고, 2지망은 학성고를 썼던것 같다. 특별한 이유는 아니었고 집에서 다니기 가까워서였다. 다행히 1지망 신정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학성고가 그 당시 공부 잘하는 착한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란 좋은 이미지가 있었고, 반면 신정고등학교는 공부 못하는 질 나쁜 아이들이 다니는 안좋은 학교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했던 시절이다. 실제로 당시 내가 다닐 당시에 신정고등학교에 학교폭력이 일상일만큼 정말 못된 아이들이 많았던걸로 기억한다. 요즘은 고교평준화에 한 세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그렇진 않을것 같다. 같은반 친구들 중 몇몇은 온산읍에 있는 홍명고등학교(이후 세인고등학교로 교명이 바뀌었으며, 지금은 폐교되었다.)까지 진학해야 했었다. 시내버스타고 그 먼거리의 외딴 곳에 있는 고등학교를 얼마나 힘들게 다녔을지 지금으로선 상상이 되지 않는다.
 

728x90

 
지금은 태화중학교가 남녀공학으로 바뀌었으나, 과거엔 남학생들만 다니던 단일성별(남성) 학교였다. 남자들만 바글바글한 남초 학교였으니, 장점보단 단점이 더 많았던것 같다. 우선 한창 사춘기가 되는 남자들 특유의 공격적인 행동들은 이때부터 많이 나타났다. 남자들만 있는 공간이다보니 그런 행동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남자들끼리 물리적 폭력도 일어나고 싸움도 자주 났다. 힘이 쎈 아이가 약하고 만만해보이는 친구를 괴롭히고 때리는 강약약강이 아주 흔했다. 때리고 얻어맞는 일은 그 시절 당연하게 생각했었고, 선생님들의 체벌도 만연했었다. 요즘은 체벌이란게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 시절엔 쪽지시험을 쳐서 틀린 갯수만큼 얻어맞기도 했고, (따귀를 얼굴 뺨에 맞기도 했고, 허벅지를 얻어맞기도 했다. 책상 위에 올라가서 꿇어앉고 걸상을 들고 서있기도 했었다.) 지금은 사라진 "깜지쓰기"라는 체벌도 그 시절까지 존재했다. 한 반에 적어도 학생들 몇명씩은 소위 '일진' '양아치'로 불리는 아이들이 존재했었다. 덩치도 왠만큼 성인만큼 자란 아이들이 있었는데, 또래 친구들을 괴롭히는 것은 물론 만만해보이는 여자선생님한테 함부로 반항하고 대드는 아이들도 있었다. 요즘은 이런 일들은 학교에선 거의 사라진것 같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 중의 하나가 있다면, 내가 다니던 시절엔 일명 '투투'라는게 있었다. 일진이나 양아치로 불리는 아이들이 다가와서 '투투'라고 말하면 2,200원을 줘야하는 신종 삥뜯기 수법이었다. 이 돈을 주지 않으면 폭력을 행사했다. 난 '투투'라는 것을 실제로 당해본적은 없어서 천만다행이지만, 같은 반 여러 친구들로부터 '투투'를 당했다는 무용담을 수없이 들었던걸로 기억한다. 또 태화중학교 근처 롯데마트 출입구 인적이 드문 시간에는 얼굴도 모를 어떤 아이가 등교시간을 지키고 있었는데, 지나갈때마다 몇번씩 나에게 '돈 달라'고 했었다. 삥뜯길까봐 진짜로 돈 한푼 가지고 다녀본적 없는 나는 솔직하게 '없다'고 말하면 '뒤져서 나오면 다 내꺼'라며 진짜로 내 호주머니를 뒤적거리기도 했었다.

난 학교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중학교 3학년 시절 같은반 내 옆자리에 앉았던 친구, 그리고 다른 반 학생이 나를 자주 괴롭혔었다. 중학교 1학년때부터 2002년 한일월드컵이 한창이었던 중학교 2학년때까지 부모님 손에 이끌려 강제로 다니다시피했던 입시학원도 있었는데,(바로 근처엔 초등학교 시절 내가 짝사랑했던 여자애가 다니던 다른 입시학원도 있었다.) 이곳에서도 학원선생님들의 체벌도 있었고, 같이 수업듣는 친구들로부터 폭행과 괴롭힘을 자주 당했었다. 학원수업을 마치고 늦은밤 통학차량(봉고차)을 타고 집 앞에서 내리던 나에게 발로 걷어차며 때리던 친구도 있었고, 자신의 책상에 올려놓았던 커피를 자기가 쏟아놓고는 바로 앞자리에 앉아있던 내가 그런짓이라며 커피 쏟아서 젖은 자신의 바지를 변상하라며 35,000원을 거의 매일같이 요구하고 나를 폭행하며 괴롭히던 친구도 있었다. 그 중에 한명은 대학을 졸업하고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대기업에 갔다는 얘길 들었다. 또 다른 한명은 대학을 졸업하고 울산에 있는 나름 네임밸류있는 대기업에 다니고 결혼까지 한 걸로 알고있다. 20대 시절 이 친구와 연락이 잠시 닿긴 했었으나, 그 친구는 나한테 과거 학폭을 저질렀던 일에 대해선 끝내 사과하지 않았고, 그래서 예비군훈련때 마주쳤지만 일부러 인사를 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인연을 끊었다.

 
2004년 2월, 태화중학교를 무사히 졸업했다. 2004년에 졸업했으니, 나는 18회 졸업생이다. 그때 그 친구들, 그리고 같은학교의 같은반, 같은 학원을 다녔던 아이들은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학교 축제때 운동장에서 "Steelheart - She's gone"이라는 노래를 정말 원곡 목소리와 똑같은 옥타브로 맛깔나게 잘 불러서 인근의 다른 학교에서도 소문나 유명세를 탔던 학생(나랑 같은 학년이었는데, 다른 반이라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이 있었던 그 시절. 나는 2학년때와 3학년때 각각 같은반이었던 중학교 동창 2명과 지금도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그 중 한명은 나와 군대도 동반입대 했다. 태화중학교 다닐 당시 잘 기억나진 않지만 한 학년에 9반까지? 있었던것 같다. 난 3학년때 정확하지 않지만 9반이었던것 같다. 담임선생님 존함도 기억이 날듯 하다. 학생들도 많았다. 한 반에 40명 가까이 달하는 학생들이 그 좁은 공간에서 수업을 들었다. 요즘은 저출산 때문인지 태화중학교 학교현황을 보니 한 학년에 많아야 3반, 학급당 학생수는 평균 20~25명밖에 되지 않았다. 졸업앨범이 없어서 무척 아쉽기만 하다.
 
공업탑에 오락실과 만화방도 있었고, 지금은 철거가 한창인 템포빌딩 1층에 자리한 맥도날드 햄버거와 문구점 팬시매장을 구경하러 다니던 그 시절의 추억을 뒤로한 채, 새로 이전된 나의 모교 태화중학교를 가보았다.
 

 
태화중학교 정문으로 들어가는 길의 입구 모습. 그 흔한 주거단지가 아닌, 여천오거리가 있는 공장들이 빼곡히 밀집된 미포산업단지와 용연공단 진입하는 방면에 위치하고 있다. 한창 하이틴 감성으로 추억을 쌓으며 즐겁게 학교생활을 해야할 사춘기 학생들이 등교하기에 어울리지 않는 낙후된 장소다. 모교 선배로서 안타깝게 느껴졌다.
 

 
바로 앞에 세라유치원이 있었다. 그리고 삼육대학교와 종말론, 토요일 안식일이라는 타이틀로 잘 알려진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라 불리는,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회에 버금갈만큼이나 이름도 길고 요란스러워보이는 교회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故 안상홍이라는 인물도 원래는 이 종교에서 활동했었다고 한다. 이후 출교해서 만든 신흥종교가 바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라는 종교다. 태블릿PC를 가지고 지나가는 사람(주로 혼자다니는 사람)에게 말을 걸며 동영상 같은걸 보여주는 방식으로 길거리 노방(路傍) 전도를 하는게 특징이다. 요즘도 무거동 신복로터리쪽에 가보면 가끔씩 젊은 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 전도하는것 같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했었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보니 태화중학교가 보였다. 많지 않은 재학생 수에 비해 학교 규모는 나름 큰것 같다.
 

 
태화중학교 정문의 모습. 참고로 뒷편 여천천에서 들어오는 작은 후문도 있다. 가끔씩 지나갈때면 학생들이 여천천을 통해 등교하는 모습도 보였다. 정문은 철제양문으로 굳게 닫혀있어서 아쉽게도 안에 들어가보진 못했다.

 
실내체육관도 보인다. 내가 20년전 태화중학교 다녔던 시절엔 실내체육관이란게 없었다. 비가오는 날엔 체육수업 대신 습기 가득한 교실에서 자율학습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태화중학교라 글씨가 새겨진 안내 비석이 세워져있다.
 

 

 
태화중학교 정문으로 진입하는 교차로의 모습. 나이 어린 중학생들의 등학굣길이 와일드한 남자들로 가득한 공단으로 진입하는 거친 곳라는게 안타깝기도 했다. 
 

 
태화중학교 정문을 벗어나 여천천으로 가보았다. 사진에 보이는 작은 징검다리는 태화중학교 후문으로 가는 곳이다.
물론 집중호수가 있거나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하천 수위가 높아져 여천천이 통제되기 때문에 이용할 수 없다.

 
태화중학교 후문으로 진입하는 곳.
 

 
학교 후문이라고 하기에 어색하고 낙후된 부분이 있다. 후문 양쪽에 있는 경작지는 개인 사유지인것 같다.

 

 
여천천 산책로가 예쁘게 잘 조성돼 있다.

 
태화중학교 맞은편으로 전기공사협회 울산시회와 전기공사공제조합 울산지점이 있다. 전기 관련하여 우리나라에는 크게 2가지 협회가 있다. 한국전기기술인협회, 그리고 한국전기공사협회다. "전기"라는 단어가 있어서 서로 같은것 같지만 실제로 하는 업무수행 영역은 완전히 다르다.
 
우선 전기기술인협회는 말 그대로 전기기술자들이 모여 만든 협회다. 전기 관련 자격증(전기기사, 전기산업기사, 전기기능사, 전기기능장, 전기 관련 기술사 등)을 보유하고 전기안전관리와 전기안전대행, 전기설계, 전기감리 등 일하는 "개인(자연인)"들이 모여서 만든 협회다. 반면 전기공사협회는 전기공사업 면허를 보유하고 있는 업체 사장님들(법인,개인)이 모여 만든 협회다. 개인업체 회원도 있고, 법인업체 회원도 있다. 전기공사업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선 전기 관련 자격증을 가진 기술자 최소 1명 이상을 반드시 상시고용을 해야하는데, 전기기술인협회에서 요구하는 전기 관련 자격증보다 스펙트럼이 훨씬 더 넓다. 이를테면, 원자력기사와 신재생에너지발전설비기사(태양광) 자격증을 갖고 있는 사람도 법적으로 전기공사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전기관련 시설물 공사 업무 수행을 수행하기 위해선 반드시 전기공사업 면허를 등록하고 전기공사협회 회원으로 입회해야 한다. 입회하기 위해선 조합에 출자도 해야하는데, 그곳이 바로 전기공사공제조합이라는 기관이다. 전기공사업체 사장님들의 '금융기관'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 출자와 각종 공제사업, 신용평가, 보증도 해준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업무가 바로 '보증' 업무인데, 전기공사공제조합은 신용평가 등급으로 보증잔액을 산정하는 다른 공제조합(기계설비공제조합, 소방산업공제조합, 전문건설공제조합)들과는 달리 '연대보증'이라는 굉장히 독특한 보증방식을 채택하고 있는게 특징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내가 전기공사를 진행하기 위해선 같은 업계에 있는 다른 전기공사업체 몇군데가 보증 해줘야 한다. 나를 보증해주는 다른 업체들도 당연히 내가 보증을 해주길 원하기에 나도 상대방 업체에 보증을 해준다. 전기공사업체 사장님들이 서로가 서로를 보증해주는 방식이다. 이렇게 연대보증으로 각종 공사계약 체결에 따른 보증서(선급금보증증권, 계약이행증권, 하자보수증권 등) 발급을 전기공사공제조합을 통해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대보증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기관은 내가 알기론 전기공사공제조합이 유일하다.
 

 
태화중학교 본관 건물의 모습.

 
신삼성자동차운전학원 건물도 바로 옆에 있다. 나는 2012년도에 이곳 학원에서 1종보통 운전면허를 취득했었다. 그 당시 감독관 직원아저씨 한분이 얼마나 불친절하던지...뉴 그랜져처럼 생긴 자가용을 타고 출퇴근하던 그 아저씨는 선하고 점잖아보이는 얼굴 인상과는 달리 일할때 짜증이 너무 심했다. 도로연수 받을때 그 아저씨가 한번 가르쳐준적 있었는데, 트럭 조수석 옆에 앉아선 나에게 온갖 짜증을 내며 가르쳤었다. 비싼 내 돈주고 이렇게까지 혼나고 욕먹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자괴감이 들기도 했었다. 물론 친절하게 잘 가르쳐주시는 다른 강사 아저씨분도 계셨었다. 다행히 도로주행시험은 두번을 도전하여 어렵게 무사히 합격했었다. 낡고 오래된 운전학원 건물의 모습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예나 지금이나 바뀐게 하나도 없었다.
 

 
태화중학교 18회 졸업앨범이 나에게 없다는 점이 무척이나 아쉽고, 안타까웠다.
예전에 집에 있었는데, 자주 살펴보지 못한게 후회된다.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는,
오랜 나의 옛 추억 속으로 간직해야만 할 것 같다.
 
#태화중학교 #신삼성자동차운전학원 #울산태화중학교 #옛태화중학교 #청솔초등학교 #여천천 #태화중학교졸업생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