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3.(일)
주말엔 가끔씩 울산 남구 옥동에 위치하고 있는 울산과학관과 정토사에 바람도 쐴겸 한번씩 다녀가보곤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인 정토사는 옥동공원묘원 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정토사 입구에는 "써니사이드업"이라는 젊은여성들이 많이 찾는 카페가 있다. 카페 외부 분위기만 봐선 여느 다른 카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것 같은데, 유독 20대 여성들이 치마입고 예쁘게 꽃단장하여 남자친구, 또는 동성친구와 많이 찾는것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인스타용으로 여성들이 사진도 많이 찍는 곳이다. 써니사이드업 카페 옆 빈공터에는 고객이 이용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는데, 이곳 주차장 뒷편 구석진 자리에 거대한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다. 내가 구경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비석이다.
비석은 정토사와 옥동공원묘원에 가는길에도 쉽게 발견하기 힘들 뿐더러, 써니사이드업 카페 뒷편에 있기에 이곳 주차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도 잘 눈에 띄진 않는것 같다. 게다가 생소한 한자어로 돼있는데다 옥동공원묘원 입구에 있기에 얼핏 봉분이 있는 묘소 같은 느낌도 있어서 사람들이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것 같다. 여튼 나는 써니사이드업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발견한 것은 아니고, 정토사에 가끔씩 들르다가 왠 거대한 비석 큰게 구석진 곳에 보이길래 호기심에 한번 가까이 가서 구경하게 된 것이다. 이 비석의 정확한 이름은 "만성계기념비(晩惺契紀念碑)"라고 한다. 비석에 한자어로 그렇게 쓰여져 있다.
비석의 한자어 음은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만성계기념비(晩惺契紀念碑)
신말신거(辛末新去)
침우무서(沈愚武書)
위의 한자어에 대해 검색을 해보아도 관련 뜻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아마 오래전에 쓰여진 비석이라서 그런것 같다.
정확하지 않지만
晩惺契紀念碑라는 한자어를 대략 풀이해보면
늦게 깨달은 것을 기념하는 비석? 인것 같다.
바로 옆에는 직사각형 형태의 네모 비석에
좀처럼 알아보기 힘든 한자어들이 한가득 새겨져 있다.
요즘엔 한자어를 거의 쓰진 않지만
한자어가 가득 쓰여진 것으로 볼 때
최소 1990년대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일단 다른 한자들은 모두 제쳐두고
우측에 있는 내용만 육안으로 살펴보기로 했다.
보통 세로쓰기 한자어는 우측부터 좌측 순으로 읽는것이 일반적이다.
불교 반야심경 책과 읽는 방식이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비석 우측부터 한자어는 다음과 같다.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
만성계(晩惺契)의 만(晩)자(者)는 노경지일면(老境之日免)이요
성자(惺者)는 이욕성심지의야(以欲誠心之義也)라
오향여인접향림지지합년노층(吾鄕與隣接鄕林之志合年老層)이
이숭유지지(以崇儒之旨)로 (旨 한자어는 식별이 안됨)
성계(成契)하여
매가진망일(每佳辰望日)에
역약함집(圛藥咸集)하여 (圛 한자어는 식별이 안됨)
론금터회지교(論衿攄懷之交)하니
각차비석(刻此碑石)하여 영세기념(永世紀念)하다
서기(西記) 일천구백구십일년(壹千九百九拾壹年)
월(月) 일(日) 김규화(金圭和) 찬(撰)
한자어 내용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1991년에 김규화씨라는 분이 지은(撰) 글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한국어문회 한자능력검정시험 1급, 특급 수준의 고난도 한자어들도 있다.(참고로 나는 한국어문회 3급 자격증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비석은 정확히 세워진 날짜는 알 수 없지만 1991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일천구백구십일년"이라는 것도 사실은 모두 한자어였다는 사실을 지금에 와서야 알게되었다. 1991년에 세워진 비석이니 30년은 훨씬 넘은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
이 비석이 정확히 대한불교조계종 정토사에서 만든 것인지, 아니면 어떤 단체나 개인이 세운 것인지는 비석 내용만으로는 추정하기 어려우나, 만성계(晩惺契), 즉 늦게 깨달았다는 뜻을 볼 때, 불교와 관련된 어떤 단체나 민간인이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로 남구 옥동에 있는 정토사 홈페이지에 적힌 사찰 연혁을 살펴보면, 1988년, 그러니까 88서울올림픽이 개최되기 전에 정토사 사찰 기공식을 열었고, 1989년이 되어 지금의 대웅전이 준공되었다. 정토사 사찰이 준공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누군가가 비석을 세운 것이다.
정토사와 만성계기념비 비석,
그리고 써니사이드업 카페와 예쁘게 꽃단장한 젊은 아가씨들을 잠시나마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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