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울산광역시 남구

울산 남구 문수로(신정동) 신정고등학교에서 (1)

울산노총각 2023. 10. 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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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9.(금)


추석연휴 잠시 들른 곳은
울산 남구 문수로
신정동에 자리하고 있는 신정고등학교이다.
 
신정고등학교는 내 모교이기도 하다.
 
2004년 3월,
운동장 모래먼지와
대공원월드메르디앙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의
공사소음과 먼지가 휘날리던
1층짜리 규모 조립식 판넬 샌드위치 형태의
가건물에 입학해서
냄새나고 노후화된
소변기와 화변기(쪼그려 앉아서 용변을 보는 변기통) 화장실을 이용하며
수업을 들었고,
 
KBS 성장드라마 반올림# 1,2,3 시리즈를 즐겨보고,
(그 당시 배우 고아라와 현정은, 배그린을 정말 좋아했었고, OST 음악들도 좋아해서 지금도 듣고있다.)
논스톱 시트콤 드라마와
대학가요제에 나오는 대학생 형누나들을 동경하며
학창시절을 보내다
 
2007년 2월에 졸업하였으니
내 기억이 맞다면 신정고 31회 졸업생인것 같다.
 
내가 졸업하고 나서야
비로소 지금의 H 형태를 갖춘 학교 신축건물이
완전히 준공되었다.
 

 
신정고등학교는
"우석고", "울산남고"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울산에서 오랫동안 거주하신 어르신들은
"신정고등학교"라는 학교에 대해선 모르지만
"울산남고"에 대해선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정도로 울산에 살고있는 기성세대는
신정고보다
울산남고라는 교명이 더 익숙한 것이다.
 
신정고등학교라는 교명은
1999년에 명칭이 바꼈기 때문에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위 사진에 나와있는 신축 건물들도
대략 2004년~2007년 쯤에 모두 준공되었기 때문에
 
옛 울산남고 시절의 하얀색과 빨간색으로 도색되어
페인트가 여기저기 벗겨진
오래되고 낡고 노후화된
길쭉한 장애인용 계단이 있던 옛 건물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학교 이미지도 2000년대 당시까지만 해도
별로 좋지 않았다.
 
바로 옆에 있는 같은 인문계의 학성고등학교는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얌전하고 착한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으나
 
신정고는 완전히 정반대의 이미지였다.
영화 "바람"에 나올법한
소위 말하는 일진들도 있었고,
학교폭력도 만연했었다.

신정고와 학성고는 상극이나 마찬가지였다.
 
고교 평준화 시절에도 불구하고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20년이 지난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신정고 입구의 모습이다.
 
난 이곳을 3년 동안 다녔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그때 당시엔 0교시가 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침 8시까지 등교해서
영어듣기 수업을 했던걸로 기억하며,
(고등학교 3학년은 그보다 더 일찍 등교했던걸로 기억한다.)
 
밤 10시까지 『사실상 강제로』 야간자율학습을 했었다.
야간자율학습에서 열외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기억으론 고등학교 2~3학년 시절
같은 반에서 유일하게 단 한명만
야간자율학습에서 예외가 됐던 애가 있었다.
면학분위기 조성을 위해서였고,
무엇보다 체육특기생이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도
미대, 음대, 체대입시 준비생 등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학생이 야간자율학습에서 절대 배제될 수 없었다.
 
그리고 토요일에도 수업을 했었다.
주 6일제 수업이었다.
지금도 주 6일제로 학교가 운영되는진 모르겠다.
 
주말을 제외하고 하루 최소 반나절 이상을
학교에서 보낸 셈이다.
 
2000년대 당시까지만 하여도
단체생활과 단체행동 등
매우 엄격한 학교의 규율과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잔재가 그대로 남겨져 있었기 때문에
(전교생 단체조회때 교장선생님께
"단결!"하며 군대식 거수경례를 했었다.
대학생 교련 과목이 폐지된지
불과 10여년 밖에 지나지 않았던 시절이다.)
 
야간자율학습에서 빠진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사춘기의 피끓는 청춘을 억누르며
교과서, 참고서와 씨름하고 있던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내가 18살이 되던 해,
 
다음날 행사(체험학습 소풍이었던것 같다.)를 앞두고
우리반 학생들 2/3 이상이
야간자율학습에서 빠지는 (도망가는)
사상 초유의 일탈을 벌인적도 있었다.
 
순진했던 나는 친구들의 일탈 행동을
마치 독일 나치의 괴벨스처럼
특정한 누군가 한명이 선동하지 않았음에도
사회적 군중심리에 이끌려 자연스레 따라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당시 집단생활에 익숙한 학교 특성상
"난 무서워서 그냥 교실에 있을래"라고 말하며 교실에 혼자 있었다간
왕따를 당할 수도 있었다.
학교 교실은 작은 정치판과도 같았다.)
 
학교를 빠져나와 친구들과 함께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야자를 빠졌던 일탈의 기쁨도 잠시,
엄청난 불안과 걱정이 엄습해왔었다.
 
결국 담임선생님의 연락을 받았고,
바로 다급하게 교실로 돌아갔다.
그때가 야자가 한창이던 저녁 7시 30분쯤이었다.
그 시간을 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물론 집에는 들어가지 않았고 교복을 그대로 입은 상태에서였다.
 
이후 같은반 친구들 모두가
그날 저녁 다시 교실로 불려가 있었다.
교실 앞 복도에서 단체로 꿇어앉아 있었다.
결국 엎드려뻗쳐 상태로 몽둥이로 얻어맞는
혹독한 체벌을 받았다.
 
 
그때가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신정고등학교 정문의 모습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불과 20여년 전에는
등교시간에 학생들이 엎드려뻗쳐 하고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던 시절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여도
무서운 선도부 선배 형들과
학생부 선생님이 교문을 지키며
두발단속, 교복 복장상태(뱃지 착용여부 포함) 등을 확인하던 시절이다.
 
난 고등학교 1학년때
딱 한번 두발단속에 걸린적 있었다.
(억울하게도 스포츠형 머리깎은지 불과 한달 반 밖에 되지 않았었고,
길다고 표현하기 애매한 머리 길이였다.)
 
교문 앞에 일렬로 늘어서
단체로 얻드려뻗쳐를 거의 1시간 가까이 오랫동안 했고,
본관 교무실 앞에까지 끌려가
학생부 선생님한테 빠따 몽둥이로
엉덩이 2대씩 쎄게 얻어맞았던걸로 기억한다.
 
1교시 조회때 나는 학생부에 끌려갔기 때문에
담임선생님은 당연히 내가 자리에 없는걸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리고 교실로 들어와서
담임선생님한테 다시 불려가서는
빠따 몽둥이로 몇대 더 얻어맞았다.
두번 연속 체벌 받은 것이다.
 
 

요즘은 학교체벌이 없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여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선
선생님들의 물리적 학교체벌이 만연했었다.
 
또 그런 체벌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체벌하는 일은 당연하였고,
또 학생들끼리 상습적으로 때리고 싸움하고 폭행하는 일도
그 당시엔 매우 흔했던 시절이다.
(남자들만 있는 학교 특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다녔던 신정고가 남녀공학에 남녀합반이었다면
남학생들이 오히려 얌전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실제 나도 고등학생 시절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
 
키가 작고 약하고 내성적이고 소심하며
말주변도 없는 전형적인 찐따였던 나는
주변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기 쉬운
먹잇감 같은 존재였다.
 
나를 상습적으로 괴롭히고 때리던 
중학생시절 같은 입시학원을 다녔던 이ㅇㅇ,
(다른 반이지만 같은 신정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엄석대"라 불리는 애들도 있었고
(그때 겪었던 트라우마 때문에 수학여행 가는걸 포기했을 정도로
무서운 애들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고등학교 3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그들을
 
난 지금도 그때의 겪었던 일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며,
지금도 그때의 과거를 생각하면
그 친구들을 결코 용서하고 싶진 않다.
 

신의(信義)와 성실(誠實)로
세계(世界)의 주역(主役)이 되자라는
비석이 새겨져 있다.
 

기와 형태의 돌담도 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엔 없었다.
 

신정고 바로 옆에 있는
대공원월드메르디앙 아파트단지 모습이다.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엔
한창 건물의 골조가 올라가며 공사중이었다.
 
 

신정고 본관의 모습이다.
 
기억으론 내가 1학년 2학기,
그러니까 2004년 가을 쯤에 준공되었을 것이다.
사물함과 책걸상 등
교육기자재들을 들고
이곳 신축 본관까지 이삿짐 나르듯
도수운반하며 옮겼던 그때의 기억이 어렴풋이 날것 같다.
 
쪼그려 앉아서 용변을 봐야하는
옛 쌍팔년도 시절의 화변기를 쓰던
1층 규모의 조립식 판넬 가건물에서
이젠 앉아서 용변을 보는 양변기로 바뀌며
쾌적한 화장실과 교실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체육관도 이때 쯤에 준공되었던것 같다.
 
옛 신정고 건물이 철거되고
새 본관건물이 지어지는 그 동안
 
나는 운동장에 있는 1층 형태의 가건물에서
운동장의 모래먼지와
아파트 공사현장의 소음과 비산먼지를 마시며
고등학교 학창시절을 보냈었다.
(그 당시 운동장은 휑휑한 모래운동장이었다.)
 
이후 1학년 2학기~2학년 1학기때까지
신축 본관건물로 완전히 입주를 마쳤던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옛 1층 조립식 판넬 가건물들은
이후 완전히 철거되었다.
(철거 시점은 기억나지 않는다.)
 
본관 뒷편에 있는 또 다른 신축건물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때
준공됐었기에 실제로 가본적이 없다.
(연결통로 포함)
 

오래되어 어릴때 기억이 잘 떠오르진 않지만
내 기억으론 2,3학년 시절엔
건물의 왼쪽편을 주로 이용했던것 같다.
 
체육관, 급식실과 가까웠는데,
 
특히 점심시간만 되면
승부욕이 강한 남자들의 특성상
1개 층 학생들이 교실에서 한꺼번에
일시에 우르르 뛰쳐나와
5층 교실에서 지하 급식실까지
식권을 들고 서로 먼저 밥먹으려고
너나 할것없이 무작정 달려갔었다.
 
한 반에 40명,
그 당시 1개 층을 9반까지 쓰고 있었으니,
무려 360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이
한꺼번에 뛰쳐나와 계단을 타고 쫓겨나듯 내려갔기 때문에
교실 복도가 강한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당시 학생들이
얼마나 저열한 안전불감증 수준을 갖고 있었는지
짐작해볼만 하였다.
 
여튼 상당히 위험하였고,
급식실 입구에서 여러명이 일시에 부딪치며 줄을 섰기 때문에
압사사고 염려도 많았던걸로 기억한다.
(안전불감증은 말할것도 없었다.)
 
내가 학교다닐 동안 안전사고 한번 안난게
신기할 정도였다.
 
요즘은 얼마나 바꼈는지 모르겠다.
 

운동장이 인조잔디였다.
이곳은 과거엔 모래운동장이었다.
 
요즘 신정고는
한학년에 10반까지,
한 반에 약 22명~28명 정도 있는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다녔던 당시엔
한학년에 12반까지,
한 반에 무려 40명 정도의 학생들이 수업을 들었었다.
 
그 좁은 교실 안에 40명이 한꺼번에 수업을 들으며
숨막히는 환경 속에서 밥을 먹고, 교실도 청소하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지금의 모교 후배들은 도무지 꿈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규모일 것이다.
 
체벌없는, 학교폭력이 없는
쾌적하고 좋은 환경 속에서
모교 후배들이 학창시절을 보낸다니
한편으론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
 
저출산이 문제가 많다고 언론이며 정부에서
한껏 떠들고 있는데,
 
개인적으론 저출산이 오히려 장점이 훨씬 큰것 같다.
아이들, 학생들이 귀하다는 인식을
국민 모두가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너무 많았던 나의 1990년대~2000년대 초반 학창시절,
그러니까 1980년대생 출산율(1.8명)과 출생아수(70만명 내외)였다면
그런 인식을 절대로 갖긴 힘들었을 것이고
체벌과 폭력이 만연한,
군국주의 잔재가 남은 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박하게 보내며
치열한 입시 경쟁을 치뤘을 것이라 생각한다.
 

농구장도 있다.
사진에는 운동장 왼쪽편에 있는데,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엔
농구장은 그 반대편 오른쪽에 있었던걸로 기억한다.
 

육상트랙도 설치돼 있다.
청솔학사라는 건물도 눈에 띈다.
 
청솔학사가 있던 자리가
바로 지금의 학교 H형 새건물 본관이 신축되기 이전에
옛 1층 규모의 임시 조립식 판넬 가건물이 있던 곳이다.
 
그때 당시엔 신정고등학교엔 관악부,
그리고 처용무(處容舞)를 하는 동아리가 있었는데,
 
관악부는 청솔학사 옆에 있는,
지금은 태권도부가 있는
관사 형태의 주택 건물에 있었다.
 
그 주택 건물에서 관악부 학생들이
저녁마다 관악기로 음악을 연습했었다.
 
지금도 관악부가 있는진 모르겠다.
 

학교 본관의 모습이다.
고등학교 1학년 2학기때쯤 부터는
이곳에서 수업을 들었었다.
 
1학년때는 이 건물이 공사 중이었기에
1층 규모의 임시 가건물에서 혹독하게 수업을 들으며 공부도 했었다.
 

신정고 교가의 모습이다.
교가를 불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신정고등학교 교가는 박목월 시인이 작사하였다.
 
참고로 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영화배우 윤여정씨의 스승님이
바로 박목월 시인이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지역주민들을 위해 체육시설로 개방하고 있다.
 

족구장도 있다.
 

간이축구경기장도 있다.
 

본관 사진 오른쪽에 신축중인 아파트는
울산 문수로 일동미라주 아르티스이다.
 

2층 주택 형태로 된 태권도부 건물이다.
 
과거엔 이 주택 건물에
관악부가 있었다.
 
옛 관악부가 있던 건물이
온전하게 남아 태권도부로 쓰이고 있어서
신기하였다.
 

태권도수련원이 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엔
태권도부는 없었고,
관악부와 처용무가 있었다.
 
태권도부는 내가 졸업한 이후에 생긴것 같다.
 
 
- 2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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