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3.(토)
모처럼 주말을 맞아
도서관에도 가볼겸 산책을 가보기로 했다.
유명한 관광지나 공원을 가보려고 했으나,
그동안 스쳐 지나갔던
소소한 우리 동네를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보통 사람들처럼 유명한 관광지를 가거나
여자친구, 아내 또는 자녀들을 데리고
쇼핑몰, 영화관, 낚시, 캠핑, 골프 등을 하러 가는
익사이팅한 취미생활을 할 만큼의 역량이
나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재미없고, 고리타분하고, 청승맞은
노총각의 볼품없는 소소한 하루 일상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이해하기 힘들고
하찮게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보내는 나에게
이러한 소소한 일상이
나름의 재미가 있는것 같아서
동네를 둘러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울산도서관 1층에 소장돼 있는
울산남구문화원에서 2009년 발간한
"울산남구지명사(蔚山南區地名史)" 책자가
과거의 내 기억을 더듬어보는데
상당히 큰 도움이 되었다.
난 태어난 이후부터
군생활을 제외하고
울산에서, 남구 달동에서 줄곧 살아왔다.
어린시절 내가 기억하는
울산 남구 달동의 모습과
지금의 달동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은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과거의 기억들을 더듬어보면 많은 것이 바뀌어있음을 실감한다.
사람들은 달동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을까.
대학교 1학년 새내기 시절,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때 조별 모임에서
자기소개를 했던 나는
"저는 달동에서 살고 있어요"라고 말했을때
갑자기 여학생들이 까르르하며
비웃던 모습이 기억난다.
난 여학생들이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을 듣고
왜 비웃었는지 처음엔 잘 몰랐다.
알고보니
"달동"이 "달동네"라는 어감 때문에
내가 달동네에 사는걸로 생각했다고 하더라.
실제로 타지역에서 왔던 같은과 학생들은
공업탑, 무거동이 있는 신복로터리,
삼산동, 성남동 같은
울산 시내는 알고 있었지만
달동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다.
사실 울산 달동은
시청과 공업탑, 나름 울산의 중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닥 주목받는 동네는 아니다.
"달동"이라는 어감이
마치 달동네를 연상케해서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달동(達洞)의 초기 지명은
"달리"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달동은 "단지"라는 이름의 지명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단지"라는 이름에서 시작돼 "달"이라는 지명으로
파생되었다는 설도 있다.
"단지"는 그릇, 도자기, 항아리를 의미한다.
"단지"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과거 이곳 울산 달동이
옹기와 제사그릇 등을 유통, 판매하는 가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울산에서 그 유명한 "옹기" 도자기가
외고산 옹기마을이 있는
울주군 온양읍 고산리에만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과거엔 울산 달동에도 옹기 도자기가 판매, 유통되는
울산의 중심지였다.
물론 달동에서
옹기도자기를 굽고 제조하는 시설(가마솥)까지
존재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곳 달동이
옹기와 도자기, 각종 제사그릇들을 판매, 유통하던
중심지였던 것은 맞다.
그래서 불과 10~20여년 전까지만 하여도
울산 달동에는
지금의 현대하이야트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다문화 어린이공원"은
과거엔 "옹기공원"이었으며,
카페, 맛집, 술집들이 즐비한
지금의 달동 삼성아파트 주변에는
"옹기전각단"이라 불리는
옹기 관련 지명도 있었다.
내가 어릴적 1990년대 당시엔
지금은 사라진 달동 867번지 소재의 달동시장을 포함하여
달동 주변 곳곳에서
각종 제사그릇과
항아리를 판매하는 가게들이
분명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로 위에 있는 사진은
울산 남구 시청사거리 쪽에 있는
교보생명 건물 뒷골목이다.
이곳 뒷골목은 과거엔
"솔떼배기"라 불렸다고 한다.
솔떼배기는 "소나무"를 뜻하는 "송(松)"이라는 한자어와
잔디를 의미하는 방언 "떼"의 합성어이다.
과거 울산에서 도시가 형성되기 이전에는
이곳 시청사거리 주변엔 소나무와 잔디가 무성했던 곳이라고 한다.
울산광역시청의 모습이다.
보이는 큰 건물은 최근에 생긴 신청사 건물이다.
원래 울산광역시청은
지금처럼 외부인들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진 않았다.
과거에는 주변으로 울타리 펜스가 설치돼 있었고,
전투경찰들이 삼엄하게 돌아다니며 감시하던 곳이었다.
그 이유는 자동차와 조선, 물류가 발달된
울산 공업도시의 특성상
데모와 과격시위가 늘상 자주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금은 신청사가 세워지고
구청사가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울타리와 펜스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시청앞 광장에는 특별히 외부인들의 출입을
제한하진 않고 있다.
신청사 건물이 있는 자리엔
과거에 "울산세무서"가 있었다.
지금은 삼산동 울산공구상가 근처로 이전되었다.
그리고 시청 신청사 앞에 있는 횡단보도도
과거엔 원래 없었고,
그 대신 육교가 세워져 있었다.
지금의 성광여고 앞에 있는 육교와
비슷하게 생긴 구조물이었다.
지금은 모두 철거되고 없다.
불과 1990년대~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여도
이곳 울산광역시청 앞에는
각종 데모를 하며 과격시위를 하는 사람들과
시위를 진압하는 전투경찰들의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울산은 데모가 늘 일상이었던 곳이다.
화염병과 깨진 보도블럭, 쇠파이프들이 날아다니던 곳이다.
그래서 화염병 냄새가 온 사방에 가득했었고,
화염병 냄새를 맡으며,
깨진 보도블럭들이 즐비한 인도길을 걸으면서
학교에 등교하는 일이 잦았다.
울산시청 옛 정문(지금의 KTX울산역 리무진버스가 정차하는 버스정류장 쪽의 보행자 출입로)이
데모꾼들이 화염병을 던져 불길이 치솟기도 했었으며,
시위대가 시청 청사(지금의 구청사) 건물내부로 진입하기 직전의
아찔한 상황들이 있었으나,
다행히 전투경찰들이 태화로터리까지 시위자들을 몰아내고
일부 시위자들을 체포, 연행하면서
상황이 일단락 됐었다.
시위자들이 전경들에게 체포돼 경찰서로 압송되는 모습도
시청사거리와 신정시장 사거리에서 몇번 목격한 적이 있다.
시청사거리에 데모하는 시위대와 전투경찰들이
충돌하는 일들이 빈번했다는 사실을
요즘엔 거의 상상하기 힘들다.
데모가 워낙 잦다보니
전투경찰들이 시청 울타리 주변으로
삼엄하게 돌아다니며 경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 당시 울산시청엔
공무원과 관계자 외에는
민원인을 포함한 외부인들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
생각했었다.
그 정도로 데모가 매우 험악하게 일어났었다.
울산에서 불과 20여년 전의 일이다.
시청사거리와 달리사거리 사이의 도로다.
이곳 도로 한가운데에
불과 30여년 전까지만 하여도
철길이 있었고,
기차가 다녔으며, 철길건널목도 있었다.
새생명요양병원은
과거엔 응급실까지 갖춘 조그만한 종합병원이 있던 곳이다.
이를 기억하는 이유는,
아버지가 집 화장실에 있는
화변기(쪼그려 앉아서 용변을 보는 변기) 수리를 하다
손을 크게 다치신적이 있었는데,
내가 어렵게 모시고 찾아간 곳이 이곳 병원 응급실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병원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울산상공회의소 건물이다.
외관의 모습만큼이나 굉장히 오래된 건물이다.
이곳 울산상공회의소 뒷편엔 울산공고가 있으며,
울산상공회의소 인근에 옛 동해선 철길이 다녔었다.
울산 강남초등학교 뒷편에 있는
달동월드메르디앙 아파트이다.
과거 이곳 아파트가 있던 자리엔
오래된 타이어공장이 있었다.
(한국타이어인지, 금호타이어였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초등학교 바로 뒷편에 있었기에
새까맣게 검게 그을려진 공장이
굉장히 노후화돼 있어 마치 흉물처럼 보였었고,
지나갈때마다 냄새도 많이났었다.
강남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는 이 건물은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라 불리는
안상홍이 창시한 기독교 계열의 신흥종교라고 한다.
안상홍증인회, 또는 안증회라 부르기도 한다.
학교 등하교길에 늘 마주치던 교회 건물이다.
교리가 좀 독특한데
아버지 하나님, 어머니 하나님
하나님이 두 명 있다나 뭐라나...
길거리 포교하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
태블릿PC나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같은걸 보여주며
느낀점 말해달라고 하거나
(주로 젊은 엄마뻘 되는 여성들이 접근한다.)
아버지 하나님, 어머니 하나님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쪽 신흥종교일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시내 돌아다니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 봤을 법한 모습인데,
길거리 횡단보도나 유동인구 많은 곳에
가판대 설치하고 양쪽에 2명이 깔끔한 정장 옷을 입고 서서
소책자, 전단지를 무료로 가져가라고 하는 모습을
무심코 지나가다 한번쯤 본적이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교회나 신천지, JMS 쪽은 아니고
"여호와의 증인"이라 불리는
또 다른 신흥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다.
기독교 교단에 대해 잘 모르던 어린시절엔
전부 똑같은 교회인줄로만 알았고,
학교 뒷편에 있는 건물도 그냥 교회 건물인줄로만 알았다.
신흥종교라는 사실은 나중에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강남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모습이다.
이곳엔 체육관, 급식실도 있다고 한다.
내가 강남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엔
그 흔한 체육관도 없었다.
(참고로 난 2001년 2월에 졸업한 53회 졸업생이다.)
원래 강남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지금의 건물은 아니었고,
녹색으로 도색된 오래된 건물로
강남초등학교 본관 건물에서 반대편 방향에
길게 세워져 있었다.
그곳에 급식실도 있었으며,
오래되고 냄새나는 화변기가 설치된 화장실도 있었다.
강남초등학교 옛 병설유치원 건물 뒷편에는
놀이터와 함께 오래된 나무들도 몇 그루 있었는데,
나무들이 다소 기괴하게 생긴 형태로 자라고 있었다.
(내 기억으론 가을에 낙엽이 졌기 때문에 단풍나무였던것 같다.)
게다가 검붉은색이
나무 기둥에 마구 도색돼 칠해져 있었고,
대못 여러개가 누군가에 의해 나무 기둥에 마구 박혀있었다.
그래서 당시 강남초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선
이 기괴한 나무들에게 얽힌
나무귀신에 대한 학교괴담이
입에서 오르내리던
공포의 장소였다.
지금은 건물과 나무 모두 철거돼 사라지고 없다.
강남초등학교는 지금은 울타리 펜스가 설치돼 있다.
과거엔 울타리 펜스가 없었다.
그래서 외부인들이 자유롭게 학교를 출입해서
운동하는 일들이 많았다.
초등학생들이 학교에서 수업 중에
외부인이 자유롭게 교내에 출입한다는 것은
지금으로썬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곳 "우드시"라 불리는 카페는
예쁘게 꽃단장한 큐티러블리한 미모의
젊은 여성분들이 많이 찾아온다.
이곳엔 원래 피아노학원이 있었다.
강남초등학교 본관 건물의 모습이다.
본관 건물이 매우 오래되었다.
내가 졸업한 이후로 한번 리모델링이 됐던 것으로 기억하나,
본관 건물의 옛 형태는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본관 건물 뒷편에 있는 달동월드메르디앙 아파트는
내가 학교다니던 시절엔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파트가 내 모교 건물 뒷편에 보이니
뭔가 낯설고 어색해보인다.
강남초등학교 정문 앞 입구 도로의 모습이다.
요즘엔 저출산이라 학생들을 거의 볼 수 없는것 같다.
내가 이곳 강남초등학교를 다니던 1990년대 당시만 하여도
어마무시하게 많은 아이들이 다녔던 곳이다.
한반에 40명, 한 학년에 무려 7반까지 있었다.
지금의 강남초등학교 재학생들은
꿈에서조차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학생수다.
등하교길에 도로 전체가
수백여명이 넘는 아이들로 가득했었고,
문방구도 굉장히 많았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을씨년스럽고 싸늘한 분위기다.
강남초등학교 정문 입구에서
파크랜드교차로 (옛 한샘학원) 방향으로 가는
작은 골목길이다.
골목길에는
비교적 큰 규모의 오락실이 1층짜리 건물에 있었다.
이곳 오락실을 운영하는 주인 아들이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다니던 시절,
같은 반 친구였던걸로 기억한다.
(이름은 잘 기억 안나지만, 성이 안씨였다.)
보경하얏트 아파트가 있는 자리가
원래는 오락실이 있던 곳이다.
종합수리사라 적힌 자전거 수리집이다.
아마 강남초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라면
한번쯤 이 독특한 옛 건물을
지나가면서 보았을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수십여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는게 신기하였다.
그 당시엔 자전거 수리를 위해
자전거가 입구 앞에 즐비했었는데,
오늘은 주말이라 그런지 보이지 않았다.
주인분도 아직 운영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강남초등학교 입구 정문의 모습이다.
"배움터지킴이"라는 경비실이 있는게 인상적이다.
내가 어린 시절엔 학교를 지키는 경비실과 경비원이
존재하지 않았고,
어른이 보호해야 한다는 그런 필요성에 대해서도
사회적 인식이 전혀 없었던,
그야말로 어린이들도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아이가 귀하지 않았던 시절을 보낸
세대라서 그런것 같다.
요즘 저출산에 아이들 인구가 워낙 적다보니
아이 한명 한명이 모두 소중하다는 분위기가 훨씬 지배적인것 같다.
내가 어렸을땐 이런 분위기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이가 너무 많아 별로 귀하지 않던 시절이다보니
막 키워지고 박하게 자라온 세대였기 때문이다.
역도산태권도가 있는 건물이다.
원래 1층에도 성진문구사를 포함해
다른 문구사들이 많았다.
역도산태권도는 내가 어렸을땐 강남초등학교,
그리고 동평중학교 형들도 많이 다녔었다.
나도 잠시 이곳을 다닌적이 있다.
원래 역도산태권도는
과거엔 달동 삼정그린코아가 있는
골목길 쪽에 있었다가 이곳으로 옮겨진 것이다.
역도산태권도는 나와 동갑내기의
강남초등학교를 다니던 아이가
지금은 사범으로 이곳에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같은 53회 졸업생이다. 기억으론 1~2살 어린 여동생도 있었던것 같다.)
물론 그 아이에 대해선 잘 모르고
같은 반도 아니었으며
그 당시에도 별로 친하진 않았다.
이곳에도 문구점들이 있었다.
유일하게 기억하는건 오른쪽 편에 있는 기와집 형태의 건물이
"태화문구사"였던걸로 기억한다.
떡볶이, 만두, 소시지 등
군것질할 수 있는 먹거리들도 팔고
킹오브파이터, 철권 같은 게임과 뽑기를 할 수 있는
작은 간이오락기들도 있었다.
학교를 마치면
이곳 문방구 앞에서 군것질도 하고
킹오브파이터97 등을 할 수 있는
간이오락실에서 게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양쪽으로 문구점들이 과거엔 즐비했었다.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내 기억이 맞다면,
사진 왼쪽편 "달동카츠"가 있는 건물이
역도산태권도가 있던 옛 건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닌적 있었기에 조금이나마 기억이 날것 같다.
강남초등학교 앞 교차로,
신정로 횡단보도의 모습이다.
예전엔 신호등이 없었다.
이곳도 달동이다.
이 동네에도 당시 친구들이 많이 살았었고,
자주 놀러갔던걸로 기억한다.
삼성아파트가 있는 동평사거리 인근,
동평초등학교와 동평중학교 방면의 도로 모습이다.
삼성아파트를 중심으로
이곳 주변이
과거엔 옹기와 제사그릇을 팔던
"옹기전각단"이라는 지명이 존재했던 곳이다.
동평중학교의 모습이다.
동평사거리의 모습이다.
달동에서 "동평"이라는 명칭은
상당히 익숙하다.
처음엔 달동의 옛 지명 중에 동평이 따로 있는줄 알았으나,
실제론 울산 북구에 있는 "동대산"이라는 산에서
유래된 명칭이 바로 동평이다.
1990년대 초,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되기 이전에
울산 달동 지역내 과밀화된 아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교육시설 건립의 필요성에 따라
강남초등학교 인근에 설립된 학교가
바로 동평초등학교와 동평중학교이다.
(이후에 2000년경 동백초등학교도 개교했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 중에
동평중학교 교가에서
"동대산 솟는햇살 ~ 마단들 앉아"라는
가사 구절이 있다.
동대산은 울산 북구 대안동
홈골수변공원 뒷편에 있는 산을 가르킨다.
동대산과 삼태봉 사이에는
습지가 여럿 분포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 습지의 평평한 지형을 따서
"동평(東平)"이라 지었고,
이를 학교 교명에 적용한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동평이라는 한자어 동(東)과
동대산이라는 한자어 동(東)이
같은 한자어로 쓰인다.
동평이 울산 남구에 있는데,
남구와 아무런 관련없는 울산 북구에 위치한 동대산에서
명칭을 가져온것인지
금시초문일 수도 있으나,
실제 학교들 중엔
위치하고 있는 곳과 전혀 관련없는 지역에서
교명을 따오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내 모교인 강남초등학교 교가에도
"은월봉 신선저두 병풍을 삼고~"라는 가사 구절이 있는데,
은월봉은 강남초등학교가 있는 달동과 무관한
남구 신정동 남산로 쪽에 있는 작은 산을 가르킨다.
왼쪽에 보이는 파크랜드 건물은
과거엔 "한샘학원"이 있었다.
그 당시 한샘학원에서 수업을 들으려면
입학 시험을 쳐서 들어가야 했을 정도로
상당히 인기가 많았던 곳이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짝사랑했던 여학생도
이곳 한샘학원을 다녔었다.
삼환아르누보 건물이다.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대형 화재사고로 건물 일부가 훼손됐으나,
지금은 리모델링이 완료된 상태다.
롯데마트 뒷편 물류 검품장~이진빌라 방향의 도로다.
원래 이곳엔 "찬물새미"라는 샘이 있었다고 한다.
찬물새미라는 뜻은
1년 사계절 내내 늘 한결같은 시원한 찬물이 나왔던 곳이라 해서
유래된 곳이다.
물론 지금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다.
왼쪽에 보이는 아파트는
제법 오래된 현대하이야트 아파트이다.
학창시절 친구들 중에
이곳 현대하이야트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현대하이야트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다문화 어린이공원이다.
과거엔 "옹기공원"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던 곳이다.
실제로 이곳 울산 달동이
옹기와 제사그릇 등을 판매, 유통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진빌라의 모습이다.
이진빌라도 제법 오래되었다.
청솔초등학교(옛 태화중학교) 앞의 모습이다.
오른쪽 편에 공인중개사 사무실이 있는데,
중학생 시절, 공인중개사와 문방구의 업종 차이점을 몰랐던 나는
어린 마음에 체육복을 구입하기 위해 이곳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찾아갔던
에피소드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웃음이 나온다.
여천천 위로 지나는 여천3교 교량이다.
과거엔 도로폭이 좁았으나,
지금은 확장되어 넓어진 상태다.
롯데마트 건물 뒷편 모습이다.
과거 롯데마트는 '롯데마그넷'이라 불렸었다.
지금의 주차장도 과거엔 허허벌판이었다가
여러차례 개발되어 지금의 모습이 갖춰진 것이다.
청솔초등학교 모습이다.
지금은 삼산동으로 이전했지만,
과거엔 태화중학교였다.
오른쪽 본관 건물은 노후화되어 허물고
새로 지으면서 청솔초등학교로 바뀌었다.
태화중학교는 지금은 남녀공학이지만
과거엔 남학생들만 다니던 남학교였다.
삼산로 태화신협앞 교차로 골목길의 모습이다.
원래 달동은 2000년대 초반 당시,
방사능 누출사고가 있던 곳이었다.
이를 내가 기억하는 이유는
같은 학원을 다니던 친구 중의 한 명도
나와 같은 달동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방사능 누출사고가 일어나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얘길 듣고
알게 되었다.
이승진 동물의료센터가 있는 이 건물은
과거엔 태화신협이 있던 자리다.
원래 이 건물엔 예식장도 있었던걸로 기억한다.
이후 저출산, 저혼인으로 문을 닫으며 사라진걸로 보인다.
-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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