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시내버스 파업 첫날, 범서 굴화주공아파트 버스정류장에서(2025년 6월 7일)

2025년 6월 7일 토요일.
우리 회사 통근버스의 마지막 하차지점 굴화주공아파트 버스정류장(문수고등학교 앞)에서 촬영한 모습이다. 주말 특근을 했던 오늘은 다름아닌 울산 시내버스의 파업이 시작된 첫날이었다. 버스노선 개편 이후 첫 파업이기도 하다. 좌석버스, 마을버스, 시외버스 등을 제외한 시내버스와 리무진버스의 모든 노선들이 파업을 하면서 사실상 울산은 대중교통 운행이 중단되었다.
시내버스를 이용하지 못한 승객들은 좌석버스(1703, 1713번, 1723번 등)를 이용하거나 마을버스를 이용해야만 하는데, 원거리로 이동해야하는 사람들은 자가용이 없으니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카풀을 하거나 택시를 타고 가야만 했다. 다행히 나는 회사가 길천산업단지에 있었기에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1713번 버스를 타고 시내버스 파업의 소용돌이를 피해 무사히 출근할 수 있었다. 직행버스(좌석버스)까지 파업했다면 나는 통근버스가 출발하는 문수고등학교(굴화주공아파트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거나 아니면 택시를 타고 갔을수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손해가 정말 크고 아침부터 고생했을 것이다.
특근을 마치고 퇴근할땐 길천산업단지 근처 양등입구에서 1713번 직행버스를 타지 않고, 통근버스를 타고 일부러 마지막 하차지점인 굴화주공아파트 버스정류장에 하차했다. 원래 저녁시간에는 평일이든 주말이든 굴화주공아파트 버스정류장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로 붐벼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오늘은 단 한명의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다니는 버스는 오직 마을버스 2대 뿐. 리무진버스까지도 파업을 했으니 대중교통 이용하는 승객들의 불편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정말 컸을 것이다.
임단협(임금과 단체협약의 줄임말)은 6월 7일 파업이 시작된지 19시간만에 토요일 늦은 밤 겨우 타결되었고, 파업이 시작된 그 다음날 6월 8일(토요일)부터 버스가 정상운행된다고 하였다. 이번 시내버스 파업은 2019년 이후 6년만의 일이다. 2019년 당시에는 오전 시간대 버스들이 간헐적으로만 다니다가(출근시간에 큰 불편) 오후에 파업이 해제된걸로 알고있다. 그러나 이번 2025년 파업은 6월 7일 첫날 당일 노란색으로 도색된 시내버스를 완전히 전면 운행을 중단시켰다. 대체할 수 있는 전세버스조차 운행이 되지 않았다. 울산의 전세버스들은 대부분 대기업 공장들을 오고가는 통근버스로 쓰고 있고,(장치산업이 많은 울산은 교대근무나 특근이 잦아 주말에도 통근버스를 많이 이용한다.) 특히 주말에는 산악회 등 친목모임회들이 이미 예전부터 예약해놓은 상태이기에 전세버스 확보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울산에서 지금까지 이런 경우를 겪은적은 내가 기억하기론 전혀 없었다. 내가 사회초년생이던 2012~2014년경에도 시내버스 파업이 평일에 한번 있었던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는 전세버스가 투입돼 겨우 탑승해서 미포산업단지로 출근할 수 있었다. 토요일에도 분명 나처럼 특근하거나 출근하는 시민들이 분명 있었을텐데, 개인자가용이 없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카풀을 이용하든지 아니면 비싼돈을 쓰든지 택시를 타고 가야만 했을 것이다.
이번 울산 시내버스 파업은 다른 이유도 아니고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반영해달라는 내용이 주요 핵심 골자였다.(대법원에서 이런 판결이 나왔으니 우리도 해달라는 의미) 울산 시내버스 노조 뿐만 아니라 서울 부산 창원 광주 등에서도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이런 요구가 일어났다. 이로인해 통상임금 체계 개편에 대한 노사간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결국 파업까지 진행된 것이다.
울산의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은 버스밖에 없다. 광역도시 중에서 유일하게 지하철 등 다른 대체할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버스 파업으로 인해 심각한 불편함을 겪는건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 울산 시민들이다. 일반적으로 울산은 대중교통이 보편화돼 있지 않다. 왠만한 직장인들 대부분이 개인자가용을 타고다니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시내버스 파업이 있더라도 왠만큼 소득이 있는 직장인들은 별다른 타격이나 영향이 없고, 오히려 시내버스 이용 자체에 대한 경험도 없는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커다란 시내버스가 더 이상 다니지 않는 "클린한" 도로라 더 좋아했을 거라 본다.)
그러나 울산의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주요 승객들은 개인자가용을 큰돈들여 타고 다니기 어려운 사회초년생, 어린 학생들, 노인, 저임금을 받는 직장인들, 저소득층, 기초수급대상자와 차상위계층 같은 교통약자들이 상당수다. 물론 쟁의권과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헌법에서 보장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 행위다. 그러나 교통약자들을 배려하기는 커녕 되려 볼모로 잡아 집단 파업을 하는 행위가 과연 정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매년 도돌이표 파업을 걱정해야만 하는 울산의 교통약자들은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도대체 언제까지 겪어야만 할까. 울산의 유일한 대중교통 시내버스의 주요 이용승객인 교통약자들의 존엄성까지 양보되고 있는 상황이다.

버스정류장 전광판에는 마을버스만 알림이 떠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이 단 한명도 없는 모습이 신기하고 이질감이 느껴진다.



울밀로 도로의 모습. 커다란 시내버스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아서 오히려 클린한 느낌도 든다.


전광판에는 "시내버스 운행중단"이라는 안내문구가 기재돼 있다.
아마 긴급문자를 못받은 시민들 중 일부는 계속 기다리다 떠났을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지 않은 어르신들은 파업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을것이다.





맞은편 문수고등학교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 모습. 이곳도 사람들이 단 한명도 없었다.



나는 굴화리에서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야음동 방면까지 가야하니 무려 2시간 가까이 걸린다.
걷는 일이야 어려운건 아니었다. 그래도 매년 도돌이표 파업을 걱정해야만 하는 울산 시민의 입장에서 이 정도 걸음은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오랜만에 산책도 할겸 걷기로 했다.
삼호동에 있는 궁거랑 무거천을 구경하였다


남산로가 있는 정광사 앞.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이 "커다란 말(巨馬)"을 타고 이곳에 다녀갔다고 해서 붙여진 거마산이라는 산(山)이 이곳에 있다.
거마산은 이후 은월봉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거마가람길 까막새공원이 십리대밭교 건너편 남산로 도로에 있다.
울산 시내버스 파업은 6월 8일(일)자로 하루만에 해제되었다.
하루 기간(6월 7일 토요일)동안은 시내버스가 단 한대도 다니지 않은 하루였다.
원래부터 개인자가용 갖고 다니던 대부분의 울산 시민들은 모처럼 거대한 버스들이 보이지 않았을테니 물만난 물고기마냥 좋아했을것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소외된 가난하고 힘없는 교통약자들은 오늘만큼 힘들고 불편한 하루는 없었을 것이다. 소외감과 자괴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돈 많은 사람들이야 개인자가용 갖고 다니며 이런 파업 이슈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지만,
돈 없는 사람들은 버스 타고다니며 이런 도돌이표 파업 이슈를 매년 겪어야만 하니 말이다.
최근 울산의 모 대기업 노조에선 임단협 요구사항을 확정했다고 한다.
기사 내용을 읽어보니...딱히 내용을 지지하고 싶진 않다. 요즘 노동운동을 보면 전태일 열사의 정신은 온데간데도 없다. 열악한 3D 업종의 중소기업이나 마트, 물류센터 같은 곳에서 활동해야 할 노조가 대기업 같은 "신의 직장"에 편중돼 있으니 말이다.
가진 사람들은 못 가진 사람들을 볼모로 잡고 어떻게든 더 가지려 혈안이 돼있고,
못 가진 사람들은 가진 사람들의 희생양이 되어 더 못가지게 되고 존엄성마저도 양보되는
위선적이고 이율배반적 울산의 현실.
이번 울산 시내버스 노조의 파업을 통해 적나라하게 그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철도, 항공과 함께 버스도 필수 공익사업으로 지정되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끝.